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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수업/입체조형

[스크랩] 알베르토 자코메티 `광장`|

by 홍차쌤 2013. 12. 2.

 

 

 

주제가 있는 그림여행  인체 ㆍ 알베르토 자코메티 '광장'


 

초췌한 인체 속에 고독한 실존이…

 

실제 미술관에서 자코메티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의 시각적 충격은 엄청나다. 마치 잎새가 무성한 우람한 나무들의 숲을 거닐다,갑자기 풀 한 포기 없는 삭막한 들판에 나서서,앙상한 가지로 서 있는 몇 그루 나무를 바라 본 '풍경의 차이'라고나 할까. 만약 방금 장대한 크기의 역동적인 몸짓과 웅혼한 이미지를 지닌 로댕의 작품을 본 연후라면,자코메티의 작품이 지닌 왜소한 형상에서 받는 '느낌의 전복'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가늘고 긴 앙상한 뼈대만을 지닌 채 조그맣게 서 있는 외로운 인물상. 인체에 남을 수 있는 겉치레의 장식과 표정과 동작 그리고 근육의 살점마저 철저히 들어내 버리고,시선에 방해가 될만한 것은 생략해 버렸다. 부피도 무게도 없는 볼륨을 상실한 인체의 입상. 자코메티가 바라 본 인간의 모습이다.

자코메티는 유령과도 같은 가늘고 긴 '초췌한 인체'를 빌려 극한적인 한계상황에 놓인 인간의 '고독한 실존'을 형상화하였다. 이것은 2차 세계대전이 가져 온 잔혹한 파괴와 대량학살 그리고 전후의 삶과 정신의 위기상황에서 희망을 잃고 망연자실해 있는 인간의 허무와 고독을 응시한 결과였다. 따라서 그의 인체상은 이러한 비인간화된 문명으로부터 비롯한 황폐한 정신적 상황과 '실존적 고독'의 상징인 것이다. 그러므로 자코메티의 관심은 처음부터 인체의 우아한 '이상미'나 세련된 관능성과 조화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존재와 허무'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극한에 이르도록 표현함으로써 전통적인 인체미학을 전복하고 해체시켜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와 같은 그의 예술행위는 동시대의 실존주의 철학사조와 어울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나 작가 장 쥬네로부터 찬사를 받았고,그들과의 교유 속에서 작가로서의 위상이 확실해질 수 있었다. 사르트르는 자코메티의 작품에 관해 2편의 글을 썼으며('자코메티의 회화' 1945,'절대의 탐구' 1948),그의 인체상에 대해 "치유하기 어려운 고독 속에 있으면서 동시에 공동생활 속에 있는 모습"이라고 했고,또한 그를 "각자에게 자신의 출구없는 고독을 되돌려 주려는 조각가이며,인간과 사물을 세계의 중심에 다시 위치시키려는 화가"라고 평했다.

이 작품 '광장'(1947~1948, 24×63.5×43㎝, 브론즈) 이 출현한 시기도 주목된다.
실존주의의 성전(聖典)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1943),'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1946)가 출간되어 전후의 한 시대를 풍미하면서 젊은 지성인들을 매료시킨 사상적 물결과 함께한 것이다. 말하자면 시대정신에 대한 자코메티의 화답인 셈이다.

텅 비어버린 삭막한 광장에 서 있는 앙상한 몰골의 인물상 다섯. 가운데 불안에 질린 듯 부동의 자세로 얼어 붙은 여성이 자리를 잡았고,양편으로 두 명씩 나누어 어딘가를 향해서 걸어가는 유령 같은 남성이 익명의 자태로 배열되어 있는 군상조각이다. 광장의 어느 한 순간. 정지와 움직임 그리고 텅빈 공간이 드러내는 '황량한 상황'이 역력하다. 아마도 이 '상황'이란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 명제와 다름없는 '이미지'이다. 그래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부조리,무의미,고통,두려움,고독의 분위기가 침묵의 공간에 감돌고 있다.

24㎝의 높이에 불과한 작품의 크기는 한 눈에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조감의 시선'이 되어 준다. 그래서 관람자는 작품과의 사이에 넉넉한 '시각적 거리'를 가지고 볼 수 있다. 우람한 덩어리의 인체상을 볼 때마다 으레 치켜 올려 보거나 뒤로 물러나서 보는 불편함이 없다. 그 만큼 관람자로 하여금 편안하게 '주체성'의 자리로 이끈다. 이 묘한 '시각적 거리의 체험'은 그의 작품이 의도한 핵심이라고 하겠다. 작품은 가는 금속 뼈대에 찰흙으로 살점을 붙이고 뜯어내기를 수없이 되풀이하는 가운데 이루어졌고,그런 연후 틀로 떠내어 청동으로 주조하였다.

1961년 파리 오데옹 극장에서 공연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란 부조리극의 무대장치를 의뢰받았을 때,그는 달랑 앙상한 나무 한 그루만 무대에 설치하였다. '고도'를 기다리는 현대인의 불안과 고독을 시각적인 비움과 침묵,절제로 해석하였으며,비운 공간이 주는 '비물질의 아름다움'을 통해 영혼의 본질을 전달하였다.

자코메티는 말했다. "나는 다섯 사람의 장정도 제대로 못 드는 커다란 조각들을 보면 짜증이 난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무게가 없다. 어떤 경우든 그들은 죽은 사람보다,의식이 없는 사람보다 가볍다. 내가 부지불식간에 가는 실루엣처럼 다듬어 보여 주려는 것이 그것이다. 그 가벼움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보았다. 생명과 영혼이란 본래 '텅빈 충만'인 것을.

글·옥영식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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