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빅 무니즈와 `웨이스트 랜드`-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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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진작가이며 폐품으로 미술작품을 만드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빅 무니즈가
세계에서 가장 큰 리우 근교의 쓰레기장 " 쟈르딤 그라마초 " 의 쓰레기를 주워서
생활하는 최하위급의 인간들과 그들의 리더격인 카다도르라고 불리는 이들을 상대로
직접 그 쓰레기장에서 3년간 생활하며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쓰레기 재활용 예술창작
을 하는 과정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서울시는 이 무거운 주제의 영화를 한낱 쓰레기 재활용 영화로 추천하는 모양이다
영국의 루시 워커가 감독하고 브라질의 페르난도 메이렐리스가 제작한 브영 합작영화다
영화는 첫장면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 높히 서있는 두 팔을 벌린 예수상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쓰레기 매립장인 자르딤 그라마초의 처참한 광경이 크로즈업 된다.
멀리서 보기에는 마치 개미떼들이 벌레를 물고 행진하는 것 같지만 크로즈업해서 자세히 보면
인간이라는, 그리고 그들에게도 희망과 아름다움과 사랑이 있다는 메세지를 은연중 시사한다.
쓰레기 더미에서 쓸만한 쓰레기를 골라서 줍는 그들에게서 자본주의의 풍요한 소비가 가 배설하는
쓰레기와 거기서 쓰레기를 주워서 먹고사는 인간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메세지를 느낄 수있었다.
그러나 빅 무니즈는 그들의 리더격인 " 카다도르" 들의 삶속으로 깊숙히 들어가 방관자적 입장이 아닌
진실로 그들과 한몸이 되어 그들이 절망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는 군상들이 아니고
희망과 아름다움과 사랑을 품고 사는 마약이나 도둑질에 이끌리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선한 인간들이라는
강한 주제를 영화는 말하고있다
무니즈는 원래 식품 즉 설탕이나 쵸컬릿이나 사탕이나 그런것으로 미술작픔을 만드는 현대 미술가다
그러나 그의 고향이기도 한 브라질의 쓰레기 매립장에서 쓰레기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니즈 자신도 불행한 과거의 삶이 있었기에 더욱 더 그들에게 쓰레기 더미 넘어에 희망과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유명한 명화들의 사진을 투사하고 투사된 영상위에서 쓰레기들로 영사된 그림을 메꾸어 나간다
또는 자신의 영상을 쓰레기로 메꾸어 나간다
작품이 다 완성된 후에 카메라가 설치된 조망대 위에서 자신이 만든 작품에 새겨진 자신을 발견하고
그들은 눈물을 흘리고 만다
자신이 작품을 메운것들은 쓰레기가 분명한데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아름다운 명화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빅 무니즈가 작품 " 마라의 죽음" 의 주인공이며 제작자인 티앙에게 묻는다
" 현대 미술이 무엇입니까 ? "
" 쓰레기 입니다 "
이는 가치있는 것과 쓰레기의 경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빅 무니즈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사명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예술이란 인류에게 희망을 주고 선한 가치를 창조하며 인류를 아름다운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라는
무니즈의 철학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찢겨지고 해어진 걸레같은 쓰레기에서 아름다움과 선함과 희망을 재창조하는 것이야 말로 예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무니즈가 떠나고 나면
그들은 다시 처참한 쓰레기 줍는 인생으로 돌아 와야하는데
그들에게 희망만 주고 떠나면 그들의 삶이란 혹시나 더 비참하게 느껴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그러나 그들은 작품을 만들어 돈을 벌 수있다는 희망으로 돈을 만들어 의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
공부를 시킬 수있으며 다음 세대에는 쓰레기 더미에서 벗어나는 삶을 이룰 수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희망를 품고 사는 가난한 인생은 희망없이 사는 부유한 인생보다 훨신 행복한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똥을 깡통에 담아서 예술이라고 비싼 값으로 팔고, 변기를 떼어서 예술품이라고 역시 비싼 값으로 파는
행위의 현대 미술은 달리의 말대로 자칫 진짜 미술의 암흑기로 접어 들거라는 우려도 존재하지만
인간은 인간 본래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선함을 추구하고 쓰레기에서도 아름다음을 창조하려는
강한 본성으로 언젠가는 원래의 미술의 자리로 돌아 오리라고 생각한다
다음은 무니즈의 기자 인터뷰를 인용하여 사족으로 쓴 글이다
빅 무니즈 (Vik Muniz)는 브라질 출신으로 뉴욕 브루클린에서 활동하는 비주얼 아티스트이다.
브라질 빈민가 출신인 그는 거리에서 우연히 싸움을 말리는 도중 다리에 총을 맞았는데
'운이 좋게도' 총을 쏜 사람이 아주 부자인지라 사건을 묻는 댓가로 받은 보상금으로 미국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
설탕과 철사와 초콜릿 시럽, 쓰레기 등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소재로 해학적인 예술작품을 만드는 재능은 본인의 말대로 1970년대 정치적 억압에 시달리던 브라질의 가난한 마을에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소재를 통해 사람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품은 '웨이스트 랜드'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검정 종이 위에 설탕으로 알알이 그린 초상화 속 아이들은 설탕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자식들이다.
큰 변화가 없다면, 이 아이들도 자라 온 삶을 사탕수수 플래테이션 농장에 묻게 될 것이다.
깨알같이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선과 음영을 이루는 설탕 입자와 함께 피사체의 삶의 보인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이야기라니, 위선적이야.
어차피 브라질의 불평등과 사회적 구조는 그대로일 뿐이잖아, 라는 마음은 다큐먼터리의
대화 속에서 흩어지고 만다.
3,000명을 대표하는 넝마주의 조합장이 모델로 출연한 <마라의 죽음>이 런던 미술품 경매장에
걸리자 무자크는 조합장과 함께 런던으로 갈 채비를 한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쩔 거냐고?
이 사람들이 변화하고, 동요하는 것이 안 보여?
런던에 다녀오고 나서도 넝마주의 삶은 계속 될 텐데?
네가 이 사람들을 책임질 거야? 잔뜩 바람만 불어넣어 놓고 어떻게 할건데?"
라는 비판에 그가 대답한다.
"내가 만약 그라면, 런던으로 갈거야.
다시 돌아와 쓰레기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도, 그래도 그 때 그 기억으로 삶은 달라질 거고,
그 다음의 몫은 그들에게 달려있고. 내가 그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런던에 갈 거야. 당연한 거 아냐?"
그래서 그들은 런던 경매장에서 5,000만원에 그림에 팔고 그 돈으로 넝마주의 공동체에
학교와 도서관을 세운다.
"사람들은 처음 넝마주의 조합(association)을 만들 때, 제가 미쳤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조합은 3,000명이 넘는 조합원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지요.
이 곳에서 예술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 저는 그가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 삶이 변했습니다.
쓰레기가 아니라 자원 재순환입니다. 저희는 보이지 않는 존재였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마라의 죽음
매립지에서 채취한 쓰레기들을 채워 자신의 초상화를 직접 완성한다.
작업 후 어떤 쓰레기도 남지 않는다.
작품의 소재는 넝마주의가 다시 분류해 재활용업체에 판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외곽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쓰레기 매립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쓰레기 매립장에 스튜디오를 차리고 3년간 그 곳 사람들과 작업한 빅 무니즈 (작가)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작가는 이 세계에 눈길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어떤 사악함을 지저를 수 있는지 이해하고 살펴보고 연상해 보려고 노력하는
존재, 그렇지만 뭔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냉소적이 되거나 천박해지거나 타락하지는 않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작가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피사체의 삶에 눈길을 주는 존재,
그리고 그들의 삶을 소재로 삼아,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살펴보고 연상해 보려고 노력하는
존재, 빅 무니즈와 '웨이스트 랜드'를 통해 작가의 역할, 그리고 '예술, 어디까지 가봤니?'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