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샘의 전시

홍차샘의 작가노트 - 색채, 감성을 담다.

홍차쌤 2015. 10. 23. 12:19

색채, 감성을 담다.

 

연화중학교

교사 김영희

 

 

 

나의 작업은 라디오를 크게 틀고, 오래된 한지 특유의 퀘퀘한 향을 맡으면서 화판에 한지를 씌우는 일부터 시작된다. 한꺼번에 56개의 화판 작업을 동시에 시작하는데, 두꺼운 장지는 마르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작업 첫날은 땀범벅이 되기 일쑤다.

둘째 날은 하얀 한지에 밑 색을 올리는 날이다. 나름 고심하여 색을 정하지만 한지에 입힌 색은 건조되면서 변하기 마련이고, 또 색을 중첩하여 표현하다 보면, 늘 예상과 다른 색이 나오므로 그냥 그날 내 마음에 꽂히는 색으로 무작정 칠한다. 어떤 색이 나올지 호기심과 기대감을 갖고 기다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즐겁다.

셋째 날엔 배경색에 어울리는 이미지나 주제를 여기저기서 찾아본다. 가장 힘든 시점이 바로 이때 인데, 배경색에 맞춰 이미지를 구상하다보니 소중한 인연을 만나는 것처럼, 어느 날 문뜩 찾게 될 때까지 몇날 며칠을 무작정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한다는 점이다. 다만 다행인 것은 일단 주제가 정해지면 그때부터는 일사천리로 그림을 금방 완성할 수 있다. 이러한 즉흥적이고 미련한 나의 작업 습관 덕분에 나의 작업 방엔 몇 개월씩 배경색만 칠해진 채 인연을 만나길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는 화판이 수두룩하다.

 

내가 이렇게 배경색 작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색채엔 감성이 담겨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두꺼운 장지에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여러 겹 올린 색채에선 캔트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마치 ‘3년 된 묵은지와 같은 숙성된 깊이감이 느껴진다. 어느 날 문득 그 느낌에 매료되었을 때부터 나는 그것을 표현하기위한 다양한 시도와 시행착오를 반복해가고 있다.

감성이 담긴 색채는 마냥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고 히려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그래서 나는 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 중, 낙관을 찍으며 작품을 완성할 때보다, 진한 홍차 한잔을 음미하며 배경색이 발색되어가는 순간을 마냥 지켜보는 시간이 가장 좋다.